이태영박사기념실

  • 01
  • 상담소의 기틀이 될 500인 재단회원을 모시며
  • “사랑이 없는 가정이란 참된 가정이 아닙니다. 사랑이 없는 가정은 죽은 가정이라고 믿습니다.
    "가정의 행복이 모아져 사회의 행복이 되고 사회의 행복이 모아져 인류의 행복이 된다고 확신합니다.”

  • 02
  • 제3차 가족법 개정 직후
  • “가족법이 개정되었습니다.
    오백년 묵은 인간차별의 벽이 무너졌습니다. ……
    주위의 많은 분들이 여성의 지위가 높아졌으니 축하한다고 말해옵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성이 새로운 것을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제 자리’를 찾았을 따름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사람노릇하게 되었을 뿐입니다.
    더군다나 가족법이 ‘여성법’은 아니지 않습니까
    ‘가족 모두의 법’이잖습니까.”

  • 03
  • 1994년 3월 <가정상담> ‘이달의 메세지’에서
  •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돈이나 사람이나 권력으로 지탱하는 사업은 결코 장수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웃과 함께 오로지 사랑으로 지탱해온 우리의 사업은 그 생명이 영원할 것입니다.”

  • 04
  • 1986년 부천서 성고문사건 최후변론
  • “검찰관님 오늘 권양에 대한 논고가 양심의 판단에 따른 것입니까. 마치 오늘이 대한민국의 종말인 것처럼 이 정권에 무릎을 꿇고 인생을 출발하시렵니까. 국가와 민족은 영원하며 검사님은 대한의 아들이라는 것을 생각해 주십시오.”

  • 05
  • 1990년 5월 20일 <한국일보> 여성저널 인터뷰 중에서
  • 이태영 박사의 업적과 화려한 수상경력을 읽으면서 우리는 이 시대에 그 같은 여성을 가질 수 있었던 기적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
    이 시대의 한국인 중 가장 많은 일을 한 사람 중의 하나인 그를 만나 그의 삶과 일에 대해 들어본다.
    ▲선생님이 이 나라 최초의 여성변호사가 된지 40년이 가까워옵니다. 그토록 일을 많이 하신 것은 ‘최초의 여성’이라는 사명감이 그만큼 컸기 때문입니까.
    이제 와 생각하니 상황이 나로 하여금 그같은 일을 하도록 미리 마련되어 있었다고 할까요. 내가 32살에 법학공부를 시작했던 것, 고등고시에 합격했으나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야당의원 마누라’라고 판검사 임명을 안해줘 변호사가 되었던 것, 상담소를 차려 법률구조사업에 뛰어들었던 것, 여성단체들과 연합하여 가족법 개정운동을 시작했던 것.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 다가와 짐으로 지워졌는데 어느덧 그 짐이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변해갔지요. 그 일들을 하는 동안 어떤 다른 일도 나의 관심을 끌거나 나를 유혹하지 못했어요.

    ▲선생님의 석사·박사학위 논문은 이혼연구였고, 상담소에서는 파탄에 이른 가족들을 상담해오셨는데, 이혼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은 어떤 것입니까.
    파스칼이 말하길 ‘만일 천사라면 이혼하지 않을 것이다. 또 만일 짐승이라면 이혼이 필요없을 것이다.’ 나는 그 말이 참 옳은 말이라고 생각해요. … 도저히 인간으로 살아갈 수 없는 상황일 때 이혼하는게 낫지만 그러나 이혼을 결정하기 전에 최대한 노력해야 하고 더구나 자녀가 있을 경우 가능하면 이혼하지 않는 것이 부모된 자의 윤리, 도덕이고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헤어지려는 부부를 상담할 때 늘 그들 자녀의 입장에 서서 할머니의 마음으로 이혼을 막으려고 애쓰곤 합니다.

    ▲결혼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하는 젊은 여성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시겠습니까
    결혼은 성장배경과 교육이 다른 남녀가 함께 살아가는 것이므로 쉽게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부터가 잘못된 것이에요. 나한테 꼭 맞는 상대가 있으리라는 생각이야말로 큰 오산입니다. … 남편이 생전에 주례를 서면서 늘 강조했던 말이 ‘사랑의 나무에 물을 잘 줘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나는 결혼생활에서 ‘남편에게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는 말을 늘 해왔는데 그러나 먼저 준 것은 나였다고 생각합니다. …일제시대 옥살이하는 남편과 결혼식을 올린 다음날부터 나는 가난한 살림 속에 팔을 걷어붙이고 소처럼 부지런하게, 힘차게 일했어요 ‘소’라는 내 별명은 그때부터 얻은 것이에요.

    대담:장명수(편집국 차장 겸 생활부장/현 한국일보 주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