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

만주모던

60년대 한국 개발 체제의 기원

한석정 지음

문학과지성사, 2020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인물이 ‘박정희’일 것이다. 현대사를 왜곡한 독재의 원흉과 반인반신이라는 평가 사이에 중간지점은 거의 없어 보인다. 솔직한 심정으로 그와 그의 처, 가족에 대한 숭배를 보면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었다는 북쪽 김일성에 대한 전설이 생각나고 ‘역시 우리는 한 민족인가’ 싶으면서 서로 혐오하면서 가장 닮아가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내가 박정희를 싫어하는 이유는 그가 주장한 ‘하면 된다’는 표어가 정말 혐오스럽고, 우리가 현대사에서 이룩한 놀라운 성취를 시민들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아니라 자신의 치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택시를 타면 간혹 ‘그 분이 우리를 먹여 살리셨는데, 요즘 것들은 은혜를 모른다’는 기사들과 짧은 말싸움을 하곤 했다. ‘아닌데요, 전 저희 부모님이 먹여 살리셨는데요, 기사님도 기사님 부모님들이 노력해서 사신 거고 지금 애쓰셔서 자제분들 키우고 사회에 기여하고 계신 거구요.’ 그래봤자 당연하게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이 책 『만주 모던』은 이러한 박정희 시대와 한국 사회에 대해 그것이 어디에서 기원하고 있는지 만주를 매개로 읽어내도록 하는 방향키이다. 1960년대는 급속도로 산업화,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오늘날과 밀접하게 연결된 시간대로 오늘날 한국인을 상징하는 ‘빨리빨리’ 문화가 사회 전반에 작동하면서 압축성장이 이루어졌다. 저자는 이 1960년대 한국의 ‘재건 체제’ 혹은 불도저식 증산, 안보 체제의 원류를 만주국 체제(1932~45)에서 찾는다. 오늘날의 한국 사회와 직결되어 있는 시공간이 1960년대라면 -이 시대에 대한 향수가 이명박·박근혜 체제를 불러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최근 백선엽의 사후 장례 문제를 두고 논란이 이는 것을 보면서 관동군, 만주군의 역사가 현대와 얼마나 가까운지 놀라고 있다 - 또 이 시대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시공간이 바로 1930~40년대 만주라는 것이다. 작업의 기강과 동원 등 권위주의 체제의 요소와 불도저식 건설을 한국에 전파한 것은 일본 식민주의다. 만주국은 남만주에 철도를 건설하고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주둔했던 관동군이 1931년 상부의 명령 없이 군벌 장쉐량 체제에 전쟁을 도발하고 이듬해 세운 나라다. 만주국 체제는 건설 분야뿐 아니라 생산, 안보, 위생 등 사회 전반에 걸친 국가적 정책 수행의 총체였다. 핵심은 소수의 지도자가 단기간에 결정해 밀어붙이는 속도다.

조선 농민들의 엑소더스, 경계의 확장, 광활한 대륙을 달리는 만철,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오족협화, 고난과 개척, 폭력과 근대, 이류들의 약진, 국제적 계보의 영화·음악 등이 만주를 설명하는 장면들이다. 1930~40년대 만주는 이러한 것들의 일종의 콜라주로 그리고 1960년대 한국은 그 시대와의 중첩적 국면으로 파악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주를 그저 소설 ‘토지’나 영화 ‘마지막 황제’로 기억하고, 만주국을 그저 그런 괴뢰국 정도로 생각했던 인식의 수준을 크게 깨뜨리는 흥미로운 방향이었고, 저자의 오랜 천착이 돋보였다.

저자 한석정은 동아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서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 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만주국 건국의 재해석』 『만주, 동아시아 융합의 공간』 (공저) 등이, 옮긴 책으로 『화려한 군주』 『주권과 순수성』이 있다.

이 숙 현 편집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