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

나는 네 Nez입니다

김태형 에세이

김태형 지음

난다, 2020

어릴 때, 엄마의 장롱인지 안방의 벽장인지에서 맡았던 코티분의 향기 그리고 봄밤 우리집 마당을 넘어 골목에 퍼지던 라일락 향기, 이렇게 향은 추억과 같이 온다. 마치 프루스트의 마들렌과 홍차처럼.

요즘 가장 좋아하는 때는 주말 아침에 부엌 창을 통해 북한산을 보면서 원두커피를 내리는 시간이다. 원두커피를 핸드밀로 갈아서 핸드드립 한 커피는 향부터 행복하다. 어떤 비누의 향은 지극한 행복이지만 모든 향이 그런 것은 아니다. 취향의 영역일 것이다. 한 번 꽂힌 향수를 계절 내내 쓰는 편인데 가끔 엘리베이터나 대중교통에서 향수 냄새가 곤혹스럽다는 글들을 보면 뜨끔할 때도 있다. 나 역시 예전 누군가의 ‘쁘와종’은 참 싫었기 때문이다. 디올의 향수 ‘쁘와종’은 요즘은 좀 유행이 지난 감이 있지만 나름 향수의 스테디셀러인데 난 그 향수를 쓰던 사람이 별로였던 모양이다. 지금은 니치 향수의 시대인 것 같다. 암튼 잘 모르지만 난 향수를 좋아한다 정도로 정리된다. 그래서 이쯤에서 A부터 Z까지, 항목별로 총망라한 향수 매뉴얼 『나는 네Nez입니다』를 읽었다. 사실 이 책은 올해 초 신문의 신간 지면에서 보고 일찌감치 사 두었던 것인데 천천히 읽었고 책의 절반은 말 그대로 A부터 Z까지 알파벳 순으로 향수 관련 용어를 정리한 일종의 사전이기에 앞부분 저자의 에세이 부분을 읽고 용어 부분은 띄엄띄엄 읽었는데 의외로 그 부분도 재미있었다.

사실 책 소개를 겸한 신문 인터뷰에서 내가 흥미로웠던 부분은 저자가, 내가 좋아했던 너무 일찍 고인이 되었다는 소식에 정말 안타까웠던 소설가 김소진의 아들이라는 점이었고 조향사가 된 그 아들의 아버지인 김소진은 ‘아노스미(Anosmie)’ 즉 후각상실증이었다는 대목이었다.

향을 사랑하고 그리하여 흔하지 않은 조향사가 되었고 그 길에 대해 진솔한 에세이와 일종의 사전을 엮어낸 저자에게 그 아버지의 이야기부터 보았다는 점은 조금 미안했지만 그래도 김소진과 너무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사별했던 그의 아들을 내가 좋아하는 향수를 매개로 만나게 된 것은 나만의 일방적인 기쁨이기는 하지만 기쁘고 반가웠다.

지은이 김태형 조향사는 세계 향수 교육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의 교육기관 이집카ISIPCA를 졸업했으며 현재 향수 브랜드 에트르라의 대표 조향사로 일하고 있다. ‘네Nez’는 코라는 뜻이다.

비염 환자로 환절기를 재채기와 콧물로 먼저 느끼는 내게 코는 각별하다. 그리고 코를 통해 감각을 깨우는 향수는 알레르기 환자에게 적합하지 않을지 몰라도 포기할 수 없다.

이숙현 편집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