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달의 메시지

‘폭력 없는 가정’을 향한 끝 없는 여정

지금부터 60여 년 전 상담소가 문을 열었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밀려들던 여성들의 하소연이란 거의 한결같이 남편의 폭력과 외도, 시집의 학대였습니다. 피해자와 더불어 이에 대한 해결을 모색해온 상담소에 대해 세간에서는 이혼을 부추기는 혹은 가정에 폭력이라는 온당치 못한 말을 갖다 붙이면서 가정파탄을 조장하는 기관이라는 오명 아닌 오명으로 부르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는 가정 내 부부차별과 남녀차별의 불평등한 관계에서 드러나는 그늘지고 어두운 부분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상담소의 사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무지한 생각이라 할 것입니다. 아주 오랜 세월 가정폭력은 그 이름도 제대로 없이 그저 ‘집안일’이었으며 특히 여성에 대해서는 북어와 비교하면서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가장이 그럴 수도 있는 일이며, 가정 내 모든일들은 조용히 있으면 될 일로 치부되었고 심지어는 가정 내 약자들을 죽음으로까지 내몰았습니다. 이런 일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상담소로서 가정폭력에 관한 법과 제도를 시대에 맞게 신설, 개정, 보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며 그 결과 1998년 여성들의 오랜 숙원인 가정폭력특례법을 만들어 그해 7월 1일부터 시행하게 되었습니다. 상담소가 문을 연 지 40여 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정폭력을 공권력의 광장으로 끌어내 공론화하고 법제를 강화하는 등 내용을 끊임없이 개선하고 있지만 그 양상은 우리들의 바람과 다릅니다. 법 시행 초기 가정폭력의 증가추세에 대해서는 가정폭력이 드러나면서 발생하는 자연적 현상으로 이해했지만 가정폭력은 법 제정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도 결코 감소세로 돌아서지 않고 그 양상은 나날이 복잡해지는 추세이기 때문입니다. 가정폭력도 결국은 폭력이라 주장 했지만 가정 내에서의 폭력은 조금 다르기를 기대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마치 인류 전체가 전쟁을 두려워하고 평화를 지향하지만 그것은 결국 바람이고 평화란 과정이며 인류의 역사는 하루도 분쟁 없는 날이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과 사회와 폭력이 그러하듯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로서 가정 또한 다르지 않다는 당연한 깨달음을 얻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회적 변화의 양상에 맞추어 가정폭력의 변화를 바르게 읽고 빠르고 적절하게 그에 대처하는 것이 아마도 바람직한 자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더욱이 사람의 근원이 되는 가정이기에 그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대해 더욱 섬세한 대처가 필요함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상담소는 설립 초기부터 가정폭력에 관해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해 왔고 가정폭력특례법 제정에 앞서 1996년 창립 4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가정폭력, 그 실상과 대책’이라는 주제를 시작으로 1998년 가정폭력특례법이 만들어지기까지 거의 해마다 이와 관련 토론회, 공청회, 심포지엄을 개최하면서 법안의 제정과 개정 및 제도 개선을 위해 쉼 없이 노력해 왔습니다.

초기 우리에게 각인된 가정폭력의 이미지는 ‘매 맞는 아내’였습니다. 지금은 매 맞는 아내, 서로 폭력을 주고받는 부부, 자녀 학대 및 노인 학대와 더불어 미성년자녀를 포함한 성인자녀들의 부모에 대한 폭행이 중요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우리나라의 정서, 문화에 비추어 더욱 세심하게 다루어야 할 사안이기에 상담 또한 미성년자녀의 부모폭력을 비롯하여 성인자녀가 부모를 폭행하는 경우 등으로 나뉘어 시행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부모를 때리는 자녀, 자녀에게 맞고 산다는 이야기를 쉽게 할 수 있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가정이란 험하고 힘든 세상에서 돌아와 쉴 곳, 위로받으며 힘을 얻는 곳이어야 합니다. 모든 가족 구성원이 그래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이러한 가정에 속할 수 있도록 상담소는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해결에 한발 다가서는 것은 현실을 바르게 직시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하기 괴롭고 입에 담기 껄끄럽다고 우리 사회의 이혼을, 가정폭력을, 저출산을 외면해서는 결코 그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수 없습니다.

상담소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가정과 관련한 이 모든 과제에 대해 결코 눈 감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모든 가족 구성원들과 함께하는 여정에 설 것입니다.

곽 배 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