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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가족

가족의 눈으로 본 한국전쟁

 

권헌익 지음 정소영 옮김

 

창비, 2020

 

 

1983년 여름, 텔레비전 앞에 휴지통을 놓고 앉아 있던 기억이 난다. 이산가족 찾기 방송이 있었다. 보기에도 닮은 사람들이 몇십 년 만에 만나 얼싸안고 울고불고하는 장면을 보느라 청소년인 나도 눈물 닦은 휴지를 버리기 위해 휴지통을 끌어안은 채 텔레비전 앞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망국과 분단의 한은 현대 한국인의 DNA에 새겨져 있는지 모른다. 세대를 내려올수록 조금씩 옅어지긴 했겠지만 말이다.

우리 사회의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여전히 아니 앞으로도 일제강점기와 분단과 한국전쟁은 중요한 쟁점이다. 같은 전범국이면서도 독일은 자국이 분단되었고 히틀러의 무덤도 남기지 않았으며 히틀러를 추모하면 범죄로 처벌을 하지만 우리의 경우 전범국 일본 대신 35년간 식민지로 착취당했던 한반도가 분단되었다. 그리고 일본은 도조 히데키 등 전범을 합사한 야스쿠니에 각료들이 때마다 봉물을 보내고 참배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치른 전쟁을 대가로 일본은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기회를 얻었고, 오늘날에도 한반도에는 여전히 친선의 탈을 쓴 매국 친일이 당당히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분단과 전쟁을 제대로 바라보아야 한다.

2020년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70년이 되는 해이다. 전쟁문화사 연구자들은 어린 시절 혹은 청소년기에 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가 간직한 살아 있는 전쟁의 기억이 그 생을 다할 때가 된 이 시점을 중요한 전환점으로 본다고 한다. 전쟁의 경험자들이 존재하지 않을 때 그 전쟁을 누가,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등 냉전 연구로 세계 인류학계에서 독보적 위치에 오른 권헌익 영국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는 전쟁과 가족을 통해 한국전쟁 당시 양민들이 처했던 현실과 폭력이 작동한 방식을 가족과 친족의 관계적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이 책은 한국전쟁이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전쟁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한국전쟁 3년 동안 민간인 사상자가 200만이 넘었는데, 그 수는 전쟁 중에 사망한 모든 교전국 전사자 총수보다 많았다. 군인도 아닌 이토록 많은 가족, 친지를 잃었음에도 한국인들은 전쟁에 대해 말을 아낄 수밖에 없었다. 지은이는 한국전쟁에서 작동한 폭력기제가 휴전 후에도 가족과 친족과 공동체 속에 강력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전쟁의 끔찍한 기억을 망각 속에 밀어 넣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남한 사회에서 민주화의 진전과 함께 전쟁의 기억들이 문학작품 등을 통해 공개되기 시작했다. 내가 읽은 많은 문학이 특히 분단과 전쟁에 기대 있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박완서의 많은 소설이 그랬고, 지금도 강렬하게 기억하는 윤흥길의 <장마> 그리고 대학 신입생 때 읽고 책 제목을 평생 관용어로 쓰고 있는 <어두운 기억의 저편>도 그렇다. 그렇게 이 책은 박완서·최인훈·현기영 등 작가의 작품과 경상북도와 제주도의 인류학적 현지조사를 통해 한국전쟁이 가족과 친족에게 끼친 영향을 탐사하였다.

또한 지은이는 전쟁의 상흔을 용기 있게 대면하려는 지역공동체의 노력에 대해 유가족의 발언을 인용하여 소리 없는 혁명으로 칭하였다. 제주에서 전개된 마을 단위의 노력은 추념식 등의 공식행사로 발전되었고 공동체를 사회와 분리하는 근현대 세계의 이념적 경향을 이겨내고 소시에타스(societas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기초한 질서)와 시비타스(civitas 영토와 소유에 기초한 시민적, 정치적 사회)가 합심하여 놀라운 정치적 공간을 창출했다고 분석하며, 이 지점에서 한국 사회가 전쟁을 끝내고 평화로 나아가는 희망의 실마리를 발견한다.

김성보 연세대 국학연구원장의 서평처럼 이 책은 전쟁과 학살이라는 참혹한 고통을 이야기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성찰과 치유의 따뜻함을 경험하게 된다.

 

이숙현 편집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