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

H마트에서 울다

미셀 자우너 지음

정혜윤 옮김

문학동네, 2022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2021년 앨범 ‘Jubilee’를 유튜브에서 찾아 들으며 이 글을 쓴다. 얼터너티브 록이라니 왠지 너바나도 떠오르고, 그러면서도 나른하고 평온한 음악이다. 이 책 『H마트에서 울다』를 쓴 미셀 자우너가 보컬이자 기타리스트로 있는 미국의 인디 팝 밴드가 재패니즈 브렉퍼스트다. 그저 나무쟁반에 연어구이와 미소 된장국이 있는 일본식 조식이 떠올라서 이름 붙였다는 이 밴드는 그래미 어워드 후보에 두 번 올랐으며, 미셀 자우너의 이 책은 뉴욕타임스에서 41주 이상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다.

책을 읽으며 몇 가지 장면이 떠올랐다. 몇 년 전 24시간 정도 중환자실에 누워 있을 때였다. 응급실에 갔다가 다행히 항생제가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중환자실로 옮겨져 정신이 들었다. 잠이 오락가락 했지만 정신은 명료해서 중환자실의 이모저모가 귀에 들렸다. 두 번의 죽음을 들었다. 임종을 앞두고 자녀들이 순서대로 보호복을 입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 조용히 숨죽여 울음을 삼키며 하나같이 약속이나 한 듯이 말했다. “엄마, 죄송해요” “엄마 미안해” 나는 누워서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자식은 결국 끝에 가서는 부모에게 미안한 건가. 그때가 생각났다. 그리고 또 책장을 넘길 때마다 할머니의 안반과 시루를 생각했다. 해가 길어지던 여름날 오후에 할머니는 마루에 안반을 놓고 콩가루를 섞은 밀가루 반죽을 밀었다 접었다 하면서 칼국수를 만들었다. 국수를 칼로 썰고 끝부분을 좀 넓게 남겨서 길게 잘라 연탄불에 구워 주셨다. 세상 고소한 과자. 그리고 때때로 부엌 한구석에 있던 커다란 시루. 시루를 덮어 놓은 베 보자기를 열어보면 드물게 갈비찜이 있기도 했고 대보름이면 오곡밥이 들어 있었다. 나는 그래서 지금도 진짜 갈비찜과 오곡밥은 시루에 찌는 것이라 알고 있다. 압력밥솥 따위. 하지만 이제 어디에도 할머니의 칼국수와 오곡밥과 지난한 입덧에서 나를 구원해준 마늘쫑 장아찌는 없다. 여섯 살까지 나를 업어준 할머니, 육교가 생길 때까지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던 할머니를 이제 영원히 먹을 수 없게 된 음식으로 추억한다.

한국인 엄마와 유대계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이 책을 쓴 딸은 사춘기를 지나면서 여느 미국 엄마들과는 다른 자신의 한국인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뮤지션의 길을 걸으며 엄마와 점점 더 멀어지던 25살 어느 날 엄마가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괴로운 투병 과정을 함께 겪는다. 힘든 투병 끝에 엄마는 세상을 떠나고 미셀 자우너는 생각한다. ‘한국 음식을 먹이고 한국 문화를 알려주었던 엄마가 없다면 나는 한국인일 수 있을까?’ 그래서 아시아 식재료를 전문으로 파는 슈퍼마켓 체인 H마트에서 장을 보며 엄마를 생각한다. 그리고 즐겨 먹던 김의 상표를 물어볼 엄마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하며 운다. H는 한아름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미국 생활에 편입된 한국 음식들과 사춘기, 폭풍의 시간을 겪는 부모와 자식의 이야기가 익숙한 듯, 새로운 듯 다가왔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H마트에만 가면 운다.” 무슨 뜻인지 대번에 이해가 가던 첫 문장이다.

이숙현 편집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