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인생(227)

영화이야기 

브로커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 이지은, 이주영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아무도 모른다><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바닷마을 다이어리><태풍이 지나가고> 등을 통해 가족 영화가 얼마만큼 다양한 이야깃거리와 주제의식의 스펙트럼을 포함할 수 있는지를 입증했다. 2018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어느 가족>에서는, 좀도둑질이 주요 생계 수단인 어떤 수상쩍은 가족의 결합과 해체를 다루며 우리가 그토록 강조하는 ‘정상성’이 가족을 구분 짓는 유일한 수단이 될 수 있는지를 통렬하게 물었다. 그리고 4년 후, 그는 한국인 배우들을 데리고 찍은 <브로커>를 통해 <어느 가족>이 던졌던 질문을 이어간다.

빚쟁이에게 시달리는 세탁소 주인 상현(송강호)과 베이비 박스 시설의 직원 동수(강동원)는 베이비 박스에 놓인 아기 우성을 몰래 데려간다. 그들은 정식 입양 절차를 기다리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 아기를 파는 브로커다.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우성의 엄마 소영(이지은)이 아기를 찾으러 돌아오고, 세 사람 사이에는 난처한 적대감이 흐르지만 결국 소영도 우성의 새 부모를 찾는 여정에 동행하기로 마음먹는다. 한편 형사팀장 수진(배두나)과 후배 형사(이주영)는 이들 모두를 현행범으로 잡기 위해 조용히 뒤를 쫓는다.

소영은 비슷한 처지의 가출 소녀들을 모아다가 성매매를 시키는 ‘엄마’의 밑에서 일했다. 우성의 아버지 역시 성 구매자 중 한 사람이었다. 소영이 마주치는 사람들은 모두 ‘대체 왜 아이를 진작 지우지 않고 이제 와서 버리느냐’라고 묻는다. 성매매에 종사하는 어린 미혼모가 낳은 아이의 미래를 생각했을 때 임신중단이 차라리 더 나은 선택이 아니었는가 하는 주변 사람들의 질문과, 태어난 후에 그 미래를 선택하는 것과 아예 태어날 기회 자체를 박탈하는 것 사이에서 무엇이 더 큰 죄인지 반항적으로 따지는 소영의 질문은, 그저 ‘현행법’의 기준으로만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는 정말 어렵다.

엄마가 자신을 보육원 앞에 버리고 갔고 언젠가는 엄마가 찾아와 주겠지 하는 희망을 품고 살았던 동수의 입장에서는 또 다른 측면을 조망한다. 한국의 실정법에서 보육시설의 아이들은 만 18세가 되면 ‘독립’해야 했다(다행스럽게도 2022년부터 시설 청소년 보호 기간은 만 24세로 연장되었다). 그 아이들은 가족이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나 버팀목 없이 가혹한 사회로 쫓겨나오다시피 내몰린다. 아이들이 차근차근 삶의 규칙들을 터득할 기회를 좀처럼 주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태어난 직후 생물학적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은 또다시 거듭 사회로부터 냉대받고 버림받는 경우가 잦았다. 일단 소중한 생명이므로 주어진 삶을 일단 살아보자, 라는 희망으로 이 상황을 방관하기엔 현실적 고통이 너무 크다.

동수가 경험한 유일한 가족 공동체였던 보육원 생활, 소영이 경험한 ‘엄마’가 운영하는 성매매 커뮤니티만이 문제가 아니다. 상현은 이혼 혹은 별거 상태다. 제법 성장한 딸은 초라한 아빠의 모습에 냉담한 경멸을 내비치고 전 아내는 다시는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는 전언을 딸을 통해 전해온다. 우성의 입양을 희망하는 ‘구매자’ 부부들의 모습에서도, 과연 아이를 받아들이고 제대로 키울 만한 각오가 되어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무책임한 이들이 많다. 그렇다면 우성이를 잘 키워줄 새로운 부모를 찾기 위해 방방곡곡을 떠도는 상현 일행이, 이 기묘한 대안 가족이 그나마 각자가 품고 있는 상처와 어두운 비밀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주고 서로를 위해 특별한 각오를 품고 희생하는 자세를 취한다는 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제시하는 가장 큰 아이러니이자, 감독이 던지는 질문일 것이다. 무엇이 정상인가? 무엇이 진짜인가?

물론 이 영화의 윤리적 지점은 아슬아슬하다. 아이에게 더 좋은 미래를 준다는 ‘선의’ 아래 벌어지는 인신매매의 현장이 결코 블랙 유머로만 다가오지 않는다(요즘 대두되고 있는 대리모 논쟁까지 떠올리게 된다). 영화는 그것을 의식한 듯 여러 가지 장치를 마련하는데, 두 형사들과 소영이 모성에 대해 입씨름을 주고받는 장면이라든가, 왜 아이 아빠한텐 아무 책임도 묻지 않고 엄마만 범죄자 취급을 하느냐는 소영의 항변이라든가, 상현과 동수라는 두 ‘인신매매범’에게 소위 ‘여성적인’ 특질들을 부여하는 등(극 중에서 우성을 돌보는 역할의 대부분은 소영보다는 상현과 동수가 맡는다) 관객들에게 계속해서 도발적인 질문과 대안을 함께 던지는 것이다. 이 영화가 선택한 결과와 답을 받아들일지는 관객 각자가 선택할 몫이지만 말이다.

김용언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