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한국가정법률상담소 2022년도 제1차 가족법개정자문위원회

등록동반자관계는 혼인제도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

김 상 용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I. 들어가는 말

1980년대 후반 이후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전통적인 혼인제도 이외에 두 사람 사이의 법적인 결합을 인정하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혼인과 구별하여 보통 등록동반자관계라고 명명되었던 이 제도는 처음에는 주로 동성혼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동성 2인 사이에서만 허용되었고 이성간에 대해서는 개방되지 않았다(예를 들어 1989년에 세계 최초로 등록동반자관계를 도입한 덴마크는 동성간에 한하여 등록동반자관계의 성립을 허용하였다). 이성간의 법적 결합으로는 이미 혼인이라는 제도가 있으므로, 이와 별도로 새로운 제도를 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초기의 등록동반자관계는 동성혼의 대안이라는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그 효력면에서도 가능하면 혼인과 동등한 지위를 인정하려고 하였다. 그 결과 초기의 등록동반자관계는 동성간의 준혼(혼인에 준하는 관계)이라는 성격을 띠게 되었다. 그 후 각국에서 본격적으로 동성혼이 입법되기 시작하면서 위와 같은 성격을 지닌 동성간의 등록동반자관계는 더 이상 존속할 근거를 잃게 되었다. 초기에 동성간의 등록동반자관계를 도입했던 나라에서 동성혼의 입법과 더불어 더 이상 등록동반자관계의 성립을 허용하지 않게 된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예를 들어 덴마크에서는 2012년에 동성혼이 도입되면서 더 이상의 등록동반자관계는 성립할 수 없게 되었다.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독일 등도 이와 같은 방식을 취하였다).

한편 1990년대 후반에 프랑스와 벨기에, 네덜란드 등 일부 국가들은 전통적인 혼인제도 이외에 두 사람간의 새로운 법적 결합을 모색하면서 동성간과 이성간의 결합을 아우르는 새로운 제도를 마련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제도는 동성간은 물론 이성간의 결합을 허용한다는 공통점을 가지면서도 구체적인 면에서는 나라에 따라 적지 않은 차이를 보였다. 혼인과 유사한 효력을 인정한 ‘무거운 결합’을 선택한 입법례가 있는가 하면(네덜란드의 등록동반자제도), 혼인과 비교하여 성립과 효력, 해소에 있어서 ‘가벼운 결합’을 선택한 입법례도 있었다(프랑스의 PACS, 벨기에의 법정동거). 이러한 제도는 처음부터 단지 동성혼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성격만을 갖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해당 국가에 동성혼이 도입된 후에도 그와 관계없이 별개의 제도로서 존속할 수 있었다. 최근의 통계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제도에 대한 선호도가 점점 높아지는 경향을 읽을 수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특히 혼인보다 ‘가벼운 결합’을 선택한 나라에서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그 사회에서 전통적인 혼인제도와 비교하여 보다 가벼운 결합을 원하는 대중적 욕구를 반영하는 현상으로 보인다.

아래에서는 동성간의 등록동반자관계를 도입했던 독일, 그와 달리 동성 및 이성간의 결합을 아우르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한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의 입법례를 간략히 소개하고(비교를 위하여 필요한 한도에서 핵심적인 내용만을 간추려서 소개한다), 후자의 입법례를 중심으로 비교, 분석하여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를 모색해 본다.

II. 독일의 생활동반자관계

1. 도입과 현황

독일에서는 2001년 8월 1일부터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고 있다. 생활동반자관계란 그 실질에 있어서 동성간의 준혼관계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동성혼의 도입에 부담을 느끼고 있던 독일정치권이 동성혼에 이르는 일종의 과도적인 상태로서 생활동반자관계를 인정한 것이다.

2001년에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처음으로 동성간의 결합에 가족법상의 지위가 인정되었고, 2017년 10일 1일부터 동성혼이 허용되면서 동성부부의 법률상의 지위는 이성간의 부부관계와 동일하게 되었다. 동성간의 혼인이 가능해지면서 더 이상 생활동반자관계의 성립은 허용되지 않는다(따라서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은 2017년 10월 1일 이전에 독일에서 성립한 생활동반자관계와 외국에서 성립한 생활동반자관계에 대해서만 적용된다). 기존에 이미 성립한 생활동반자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혼인관계로 전환할 수도 있고(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 제20조a), 기존의 생활동반자관계에 머물러 있을 수도 있다. 2017년 10월 1일 전까지 독일에서는 매년 약 7,000건 가량의 생활동반자관계가 등록되었으며(2014년: 7,112, 2015년: 7,401, 2016년: 7,733), 동성혼이 시행된 이후 동성혼이 전체 혼인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약 3%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2018년: 이성혼 449,446, 동성혼 21,757, 2019년: 이성혼 416,324, 동성혼 14,021, 2020년: 이성혼 373,304, 동성혼 9,939).

2. 성립

위에서 본 바와 같이 2017년 10월 1일부터 독일에서 동성간의 혼인이 허용되면서 생활동반자관계의 성립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었으며,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 에서도 성립에 관한 규정은 모두 삭제되었다. 2001년 시행 당시의 법률은 생활동반자관계의 성립 요건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었다. ⅰ) 생활동반자관계는 동성 사이에서만 성립할 수 있다(이점에서 독일법은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스위스, 체코, 헝가리 등과 같고, 동성뿐만 아니라 이성 간의 결합까지도 허용한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그리스, 오스트리아 등과 구별된다). ⅱ) 생활동반자관계를 형성하려는 사람들은 서로에 대하여 일생 동안(auf Lebenszeit) 생활동반자관계를 맺기를 원한다는 의사를 표시하여야 한다(이러한 의사표시는 관할관청에 제출되어야 하며, 신분등록공무원은 이를 신분등록부와 생활동반자관계등록부에 기록한다). 일생 동안 생활동반자가 되겠다는 의사를 요건으로 하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독일어의 ‘Lebenspartner’는 단순한 생활동반자라기 보다는 ‘인생의 반려자’ 또는 ‘인생의 동반자’로 번역하는 것이 그 관계의 실질과 무게감에 부합하는 번역이라고 생각된다(다만 이제까지 우리사회에서 생활동반자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된 점을 감안하여 그 용어를 그대로 사용한다). ⅲ) 미성년자는 생활동반자관계를 맺을 수 없다(혼인과 달리 예외가 인정되지 않는다). ⅳ) 이미 혼인 중이거나 생활동반자관계에 있는 사람은 이중으로 생활동반자관계를 맺을 수 없다. ⅴ)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부 또는 모만을 같이 하는 형제자매 포함) 사이에는 생활동반자관계를 맺을 수 없다. ⅵ) 생활동반자 사이에 부양과 돌봄의 의무를 부담하지 않기로 하는 합의가 있는 경우에는 생활동반자관계는 유효하게 성립하지 않는다(가장 생활동반자관계를 방지하려는 취지로 이해된다).

3. 효력

(1) 생활동반자 사이의 관계

① 생활동반자관계는 혼인과 마찬가지로 일생에 걸친 법적 공동체의 성격을 갖는다. 이에 따라 생활동반자는 서로에게 부양, 협조, 돌봄의 의무를 부담할 뿐만 아니라 공동으로 생활을 영위할 의무를 진다(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 제2조). 생활동반자는 역할분담에 관한 협의에 따라 소득활동 또는 가사를 통하여 서로에 대한 부양의무를 이행한다(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 제5조). 생활동반자관계의 해소 후에는 각자의 생활을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 원칙이지만, 스스로 자신을 부양할 수 없는 사정이 있는 때에는 전 생활동반자에 대하여 부양을 청구할 수 있다(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 제16조).

② 생활동반자는 부부와 마찬가지로 공통의 성(姓)을 쓸 수도 있고(공통의 성을 정하는 경우에는 동반자 각자의 출생 당시의 성이나 공통의 성을 정할 때까지 사용해 왔던 성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그 때까지 사용했던 성을 유지할 수도 있다. 또한 자신의 성이 공통의 성으로 정하여지지 않은 동반자는 공통의 성 앞이나 뒤에 이제까지 자신이 사용해온 성이나 출생 당시의 성을 붙일 수도 있다(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 제3조).

③ 2001년 시행 당시의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은 혼인의 경우와 달리 생활동반자관계의 성립 전에 생활동반자관계에 적용될 재산관계의 유형을 선택하여 관할관청에 제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었다(이에 따라 생활동반자관계를 맺으려는 사람들은 혼인에 있어서의 법정부부재산제인 부가이익공동제(증가재산분할제)를 비롯하여 공유제, 별산제 등의 재산관계 유형을 선택할 수 있었다). 2004년 개정(2005년 1월 1일 시행)으로 재산관계에 있어서 생활동반자관계와 혼인 사이의 차이가 없어졌으며, 이제 생활동반자도 별도의 합의가 없는 한 법정부부재산제의 적용을 받게 되었다(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 제6조. 법정부부재산제인 증가재산분할제란, 혼인 중에는 큰 틀에서 별산제를 유지하되, 혼인해소 시에는 혼인기간 동안 증가한 재산을 균분하여 분할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④ 2001년 시행 당시의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은 혼인해소의 경우와 달리 생활동반자관계 해소 시의 연금청산에 관한 규정을 두지 않았다. 2004년 개정에 의하여 2005년 1월 1일 이후에 성립한 생활동반자관계가 해소될 때에는 연금청산에 관한 법률이 적용됨에 따라 생활동반자의 일방은 상대방에 대해서 연금에 대한 청산을 청구할 수 있게 되었다(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 제20조). 상대방이 장래 수령하게 될 연금에 대한 권리와 현재 수령하고 있는 연금에 대한 권리가 모두 청산의 대상이 되며, 법정연금보험(근로자와 일정한 범위의 자영업자가 가입하는 노령연금)에 의한 권리, 공무원연금이나 직능별 연금(의사, 약사, 변호사 등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가입하는 노령연금)과 같은 그 밖의 일반보장체계상의 권리, 기업노령연금상의 권리, 사적 노령연금상의 권리, 사적 장애연금상의 권리 등이 모두 포함된다. 연금의 청산에 대한 권리는 생활동반자관계에 적용되는 재산관계와 관계없이 인정된다(예를 들어 생활동반자관계가 성립할 때 재산관계에 대해서 아무런 의사표시를 하지 않아서 법정재산제가 적용되는 경우이든 생활동반자관계의 성립 시 별산제를 선택하여 별산제의 적용을 받는 경우이든 연금의 청산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또한 생활동반자관계의 해소 후의 부양과는 달리, 생활동반자관계에 있던 일방이 스스로 부양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있을 때에만 인정되는 것도 아니다. 생활동반자관계에 있었던 기간 동안 취득한 연금에 대한 권리는 균등한 비율로 분할되는 것이 원칙이다.

(2) 부모와 자녀의 관계

① 혼인한 부부와는 달리 생활동반자관계에 있는 두 사람은 공동으로 자녀를 입양할 수 없다. 다만 생활동반자관계에 있는 일방이 자녀를 단독으로 입양하는 것은 가능하며, 이때에는 상대방의 동의가 필요하다(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 제9조 제6항). 일단 생활동반자관계에 있는 일방이 자녀를 입양하면, 그 후 다른 일방이 순차적으로 그 자녀를 또 입양하는 것은 허용된다. 이러한 경우에는 그 양자는 생활동반자 쌍방의 공동의 자녀가 되므로, 실질적으로 결과에 있어서는 공동입양을 한 것과 차이는 없다.

2001년 법 시행 당시에는 생활동반자관계에 있는 상대방의 자녀를 입양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으나(즉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이 제정될 당시 독일의 입법자는 생활동반자 쌍방이 공동으로 자녀의 부모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2004년 개정에 의하여 2005년부터 상대방의 양자 또는 친생자를 입양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 제9조 제7항 2문). 이러한 경우 그 자녀는 생활동반자관계에 있는 두 사람의 공동의 자녀가 되므로(두 사람의 생활동반자는 자녀의 공동친권자가 된다), 생활동반자 쌍방에 대해서 부양청구권을 가지고, 상속권도 취득하게 된다. 생활동반자에게도 부부와 같이 공동입양의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 바 있으나, 현행법은 여전히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공동입양을 원한다면 현재로서는 생활동반자관계를 혼인으로 전환한 후 공동입양을 하는 방법이 있을 뿐이다

② 생활동반자관계의 일방(단독친권자)이 자신의 친생자나 양자를 생활공동체에 데리고 들어와 함께 사는 경우, (부모의 신분을 갖지 않는) 상대방은 친권자와 협의하여 자녀의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 공동으로 결정할 수 있다(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 제9조 제1항). 또한 지체를 하는 경우 자녀의 복리가 위태롭게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친권자의 결정을 적시(適時)에 받을 수 없는 때에는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도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다(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자녀에 대해서 친권을 갖는 부모의 일방과 그의 생활동반자가 자녀와 가족공동생활을 하는 경우에는 자녀에게 생활동반자가 공동으로 쓰는 성을 부여할 수 있다(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 제9조 제5항).

생활동반자가 별거하는 때 또는 생활동반자관계가 해소된 경우, 자녀와 오랜 기간 가족공동생활을 해왔던 생활동반자에게는 자녀와 면접교섭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된다(독일민법 제1685조 제2항). 물론 면접교섭권이 언제나 당연히 인정되는 것은 아니며, 면접교섭이 자녀의 복리에 기여하고 생활동반자와 자녀 사이에 실질적인 가족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경우에 한한다.

(3) 상속

① 상속에 있어서 생활동반자는 배우자와 마찬가지로 상속권과 유류분권(법정상속분의 2분의1)을 갖는다(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 제10조). 사망한 생활동반자의 직계비속과 공동상속인이 되는 경우 생존한 생활동반자의 상속분은 4분의 1이며, 이외에 생활동반자관계의 해소에 따른 재산관계의 청산으로 상속재산의 4분의 1을 더 받는다(법정재산제의 적용을 받는 경우). 사망한 생활동반자의 부모나 형제자매 또는 조부모와 공동상속인이 될 때에는 생존 생활동반자의 상속분은 2분의 1이다(이외에 생활동반자관계의 해소에 따른 재산관계의 청산으로 4분의 1을 더 받는 것은 동일하다. 결국 생존 생활동반자의 몫은 4분의 3이 된다). 위에서 언급한 공동상속인이 될 사람이 없는 때에는 생존 생활동반자는 단독상속인이 되어 전 재산을 상속한다(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 제10조 제2항 1문).

② 이외에 생존 생활동반자는 공동생활에 사용하던 가재도구를 다른 상속인에 우선하여 취득할 수 있다.

사망한 생활동반자가 임차한 주택에서 함께 거주하고 있었던 경우에는 생존 생활동반자는 임차인의 지위를 승계하여 임차주택에서 계속 거주할 수 있다(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 제11조).

4. 생활동반자관계의 해소

생활동반자관계는 일방의 사망이나 법원의 심판에 의해서 해소된다(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 제15조). 재판에 의한 해소 사유는 다음과 같다. ⅰ) 1년 이상의 별거를 전제로 하여 생활동반자 쌍방이 생활동반자관계의 해소를 청구하거나, 일방이 청구하고 다른 일방이 생활동반자관계의 해소에 동의하는 경우, ⅱ) 생활동반자 쌍방이 1년 이상 별거하고 있으며, 생활동반자관계가 파탄되어 그 회복을 기대할 수 없는 경우(생활동반자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된 때에는 피청구인이 생활동반자관계의 해소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에도 청구가 인용될 수 있다), ⅲ) 생활동반자 쌍방이 3년 이상 별거하고 있으며, 그 중 일방이 생활동반자관계의 해소를 청구한 경우(피청구인이 해소에 반대하더라도 청구가 인용될 수 있다), ⅳ) 생활동반자관계의 계속이 청구인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는 경우로서 그 원인이 상대방에게 있을 때(예를 들어 피청구인에게 폭력성향이 있는 경우). 이러한 경우에는 일정한 기간의 별거를 거치지 않고도 바로 생활동반자관계의 해소를 청구할 수 있다.

생활동반자 쌍방이 3년 이상 별거한 경우에도 예외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정이 있는 때에는 생활동반자관계의 해소 청구가 기각될 수 있다: 생활동반자관계의 해소가 이를 반대하는 피청구인에게 너무 가혹한 결과가 되는 예외적인 사정이 존재하고, 생활동반자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청구인의 이익을 고려하더라도 예외적으로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예를 들어 생활동반자관계가 해소될 경우에 피청구인이 자살할 위험이 있는 경우).

III. 프랑스

1. PACS의 도입과 현황

(1) 프랑스의 PACS는 「PACS에 관한 1999년 11월 15일 법」을 통해 제정되고 다음 날인 11월 16일부터 시행되었다. 프랑스에서 PACS가 제정된 이유는 크게 외부적 요인과 내부적 요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 외부적 요인으로는 1980년대 후반부터 일련의 유럽국가들(1989년 덴마크, 1993년 노르웨이, 1994년 스웨덴, 1996년 아이슬란드)에서 동성간의 결합에 혼인에 준하는 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입법이 이루어진 것을 들 수 있으며, 내부적 요인으로는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 나타난 혼인율의 감소와 자유로운 동거의 증가를 들 수 있다.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는 복잡한 이혼절차, 이혼의 효과로 인한 부양, 재산분할 등에 부담을 느낀 젊은 세대가 혼인을 기피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었는데, 이를 계기로 프랑스 정부는 혼인에 비하여 부담이 적은 새로운 제도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에 더하여 동성간의 결합에 대한 입법의 필요성이 겹치면서 프랑스 정부는 동성간의 결합과 이성간의 결합을 아우르는 PACS라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게 되었다.

(2) PACS가 도입된 1999년 이후 혼인과 PACS의 성립 추이를 비교해 보면, PACS의 성립수는 꾸준히 증가한 반면 혼인수는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PACS 시행 초기에는 PACS의 성립수가 전체 혼인수의 약 10% 정도였으나(2002년 혼인수 286,169건, PACS의 성립수 25,305건), 2019년에는 약 90%에 이르고 있다(2019년 혼인수 224,740건, PACS 성립수 196,370건. 2020년 혼인수 154,581, PACS 성립수 196,370. 2020년에는 오히려 PACS 성립수가 혼인수를 추월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2013년에 프랑스에서 동성혼이 허용되었지만, 이와 관계없이 PACS의 성립수는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특히 이성간의 결합이 큰 폭으로 늘고 있다(2000년에는 동성간의 PACS 성립비율이 전체의 24%였으나, 2020년에는 5%에 미치지 못하였다). PACS가 도입될 당시에는 동성혼에 대한 대안이라는 성격이 강했으나, 현재의 상황을 보면 전통적인 혼인제도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성격이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PACS 도입 당시에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프랑스에서의 혼인 및 PACS의 변화추이에 대해서는 아래의 표 참조.

[혼인 및 PACS 통계: 1990-2020]

2. 성립

(1) PACS는 공동생활의 영위를 위하여 동성 또는 이성인 2인의 성년에 의해 체결되는 계약(contrat)이다(프랑스민법 제515-1조). PACS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요건을 갖추어 신분등록공무원에게 신고하여야 한다. ⅰ) 당사자는 원칙적으로 성년자이어야 한다(프랑스민법 제515-1조), ⅱ) 직계혈족(직계인척) 및 3촌 이내의 방계혈족간이 아니어야 한다(프랑스민법 제515-2조 제1호), ⅲ) 이미 혼인한 상태에 있거나(프랑스민법 제515-2조 제2호) 다른 사람과의 사이에서 PACS가 성립되어 있지 않아야 한다(프랑스민법 제515-2조 제3호).

(2) PACS를 체결하고자 하는 당사자는 신분등록공무원에게 공동으로 신고하여야 하며, 신고 시에 자신들이 작성한 PACS에 관한 약정서를 제출하여야 한다. 신분등록공무원은 접수한 신고를 등록한 후 신고에 대한 공고절차에 착수하게 된다(프랑스민법 제515-3조 제1항 및 제3항).

PACS 신고가 등록되면 당사자 각자의 출생증명서에 PACS에 관한 약정, PACS의 성립 사실 및 상대방의 신분 사항이 기재된다(프랑스민법 제515-3-1조 제1항). PACS 성립의 효력은 당사자 사이에서는 신분등록공무원이 신고를 접수하여 등록한 날부터 발생하며, 제3자에 대해서는 공고기간이 완료된 때부터 발생한다(프랑스민법 제515-3-1조 제2항).

3. 효력

(1) 당사자 사이의 관계

PACS 당사자는 서로에 대해서 동거, 부양, 협조 및 정조의무를 부담한다(프랑스민법 제515-1조 및 제515-4조). PACS의 성립에 의해서 인척관계는 발생하지 않으며, 성(姓)도 변경되지 않는다(PACS의 당사자는 공통의 성을 사용할 수 없다).

PACS 당사자는 신고 시에 제출하는 약정서를 통해 생활비용의 액수와 분담에 대해서 정할 수 있다. PACS 체결 당시 당사자들이 재산관계에 대하여 별도의 약정을 하지 않은 경우에는 법정재산제로서 별산제가 적용되므로, PACS 성립 전에 각 당사자가 가지고 있던 재산은 물론, PACS의 존속 중에 소득활동이나 상속 등을 통해 취득한 재산은 각자의 소유가 된다(프랑스민법 제515-5조 제1항). 적극재산은 물론 소극재산(채무)에 대해서도 별산제가 적용되지만, 일상가사에 관한 채무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연대책임이 인정된다(프랑스민법 제515-4조). 다만 PACS의 존속 중에 취득한 재산 중에서 누구에게 속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은 재산(예를 들어 가재도구 등)은 공유로 간주되어 PACS 당사자 각자에게 균등한 권리가 인정된다(프랑스민법 제515-5조 제2항).

(2) 자녀에 대한 효과

PACS 존속 중에 자녀가 출생한 경우 그 자녀는 혼인외의 출생자가 된다. 혼인 중에 아내가 자녀를 출산한 경우에 적용되는 친생추정에 관한 규정(프랑스민법 제312조)이 PACS에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PACS 당사자는 인지에 의하여 자녀와의 친자관계를 발생시킬 수 있다.

PACS 당사자 2인이 자녀를 공동으로 입양하는 것은 원래 허용되지 않았으나, 최근의 입양법 개정을 통해 공동입양이 가능하게 되었다.

4. 해소

(1) 사망이나 혼인으로 인한 해소

PACS 당사자 일방이 사망하거나 혼인(PACS의 상대방과 혼인하는 경우를 포함한다)하는 경우 PACS는 자동적으로 해소된다(프랑스민법 제515-7조 제1항).

사망으로 해소되는 경우 PACS 당사자에게는 법정상속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다만 생존한 일방은 프랑스민법 제763조에 따라 부부의 일방이 사망한 경우와 동일하게, 사망한 일방이 임차한 주택에서 1년 동안 거주할 수 있으며, 그 기간 동안 가구 및 일상생활에 사용하던 동산에 대한 용익권을 가진다(프랑스민법 제515-6조 제3항).

(2) 당사자의 의사에 의한 해소

PACS 당사자는 협의 또는 단독으로 PACS를 해소할 수 있다(프랑스민법 제515-7조 제3항). PACS의 해소에 합의한 당사자 2인은 PACS 신고지의 신분등록공무원에게 PACS의 해소에 관한 공동의 의사를 제출한다(프랑스민법 제515-7조 제4항).

PACS 당사자 일방이 PACS를 해소하려는 경우에는 해소의 의사를 상대방에게 서면으로 고지하고, 그 사본을 PACS 신고지의 신분등록공무원에게 제출해야 한다(프랑스민법 제515-7조 제5항). PACS 해소의 의사를 전달받은 신분등록공무원은 해당 사실을 등록하고 공고절차에 착수한다(프랑스민법 제515-7조 제6항). PACS 해소의 효과는 그 사실이 등록된 날에 발생한다(프랑스민법 제515-7조 제7항).

(3) 해소의 효과

대부분의 PACS는 그 존속기간 동안 별산제의 적용을 받으므로, 해소(생전 해소와 사망에 의한 해소를 포함한다) 시에도 별산제의 법리가 그대로 적용된다. 따라서 재산관계에 대한 청산으로서 재산분할청구나 연금에 대한 권리의 청산은 원칙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다만 누구에게 속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은 재산이 있는 경우에는 당사자의 합의에 의해서 분할할 수 있으며,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에는 당사자의 청구에 따라 판사가 결정한다(프랑스민법 제515-7조 제10항).

PACS를 일방적으로 해소하는 경우에도 상대방에 대한 손해배상의무는 원칙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PACS의 일방적 해소 가능성은 PACS의 본질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헌법재판소는 PACS의 일방적 해소가 1789년의 인권선언에 기인한 헌법의 기본 이념에 원칙적으로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바 있다.

IV. 벨기에

법정동거의 도입과 현황

(1) 1996년 초부터 벨기에의 몇몇 도시 및 소규모 지방자치단체는 그 고유권한에 의해서 동성간 및 이성간의 동반자관계를 지방자치단체의 등록부에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이런 식으로 지방자치단체에 등록된 동반자관계는 아무런 법적 효력도 없었고 단지 상징적인 의미밖에 갖지 못했으나, 벨기에의 입법자로 하여금 이에 관한 입법적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1998년 10월에 법정동거에 관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여 1998년 11월 23일 국왕의 승인을 받아 2000년 1월 1일에 발효되었다.

법정동거(cohabitation légale)라는 새로운 제도는 당사자 사이에 어떠한 가족법상의 신분도 창설하지 않으며(예를 들어 일방 당사자와 상대방의 친족 사이에는 인척관계가 발생하지 않는다), 단지 당사자 간의 재산관계에 대해서 몇 가지 실용적인 규정을 두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런 이유로 법정동거에 관한 규정은 벨기에 민법전 제1편(人)에 들어가지 못하고, 소유권취득의 방식에 관한 제3편에 편입되었다. 벨기에 입법자는 이 새로운 제도가 당사자 사이에 신분관계를 창설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여 - 다른 나라의 입법례와 달리 – 등록동반자관계라는 용어 대신 법정동거라는 명칭을 채택하였다.

(2) 2000년에 법정동거제도가 도입된 이후 2003년부터 벨기에에서도 동성혼이 가능하게 되었으나, 법정동거제도는 그와 관계없이 병존하고 있다. 혼인에 있어서 동성혼과 이성혼의 비율, 법정동거(법정동거는 동성이든 이성이든 관계없이 허용되는데, 이에 관한 별도의 통계는 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의 추이는 아래의 표와 같다. 2000년 이래 혼인수에는 큰 변화가 없는 반면, 법정동거수는 크게 증가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특히 2020년에는 법정동거수가 혼인수를 추월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혼인·법정 동거: 2000-2020]

2. 성립

(1) 법정동거의 성립요건은 다음과 같다(벨기에민법 제1475조). ⅰ) 법정동거는 두 사람 사이에서만 성립할 수 있다. ⅱ) 원칙적으로 성년자만이 법정동거를 성립시킬 수 있다. 제한능력자가 법정동거를 성립시키려면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ⅲ) 법정동거를 성립시키려는 사람은 타인과 혼인관계에 있거나 법정동거관계에 있어서는 안 된다. ⅳ) 이외에 다른 제한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혼인이 금지되는 혈족이나 인척간에도 법정동거는 허용된다. 또한 법정동거는 성별에 관계없이 성립할 수 있으며, 가족관계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도 개방되어 있다(예를 들면 2인의 자매 사이에 법정동거가 성립할 수 있다). 법정동거는 본질적으로 혼인과 완전히 다른 제도로서 성적인 결합을 전제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2) 법정동거는 당사자가 신분등록공무원에게 법정동거의 의사를 서면으로 제출하고, 수령증을 교부받으면 성립한다(벨기에민법 제1476조). 신분등록공무원은 법정동거의 요건이 갖추어져 있는지를 심사하고, 문제가 없으면 주민등록부에 기록한다. 신분등록부에 기록하지 않는 이유는 법정동거가 신분의 변동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3. 효력

(1) 법정동거에 대해서는 몇 가지 강행규정이 적용되며, 당사자는 이와 다른 합의를 할 수 없다(벨기에민법 제1477조). 첫째, 혼인의 효력으로 인정되는 혼인주택의 보호에 관한 규정(벨기에민법 제215조)이 법정동거에 적용된다. 이에 따라 법정동거인 쌍방이 거주하는 주택은 그 중 1인이 단독소유자라고 해도 상대방의 동의없이 처분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둘째, 법정동거인 쌍방은 각자의 능력에 따라 생활비용을 분담하여야 한다. 셋째, 법정동거인 일방이 공동생활과 자녀양육(법정동거인 쌍방이 양육하는 자녀로서 공동의 자녀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자녀를 포함한다)을 위하여 부담한 채무에 대해서 다른 일방은 연대책임을 진다.

이러한 강행규정 이외에 벨기에민법은 법정동거인 쌍방의 재산관계에 대해서 별산제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임의규정이므로 당사자는 이와 다른 약정을 할 수 있다(벨기에민법 제1478조).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법정동거가 성립한 경우에는 당사자 간의 재산관계에 한정하여 일정한 효력이 발생하는 데 그치며, 당사자 사이에 혼인의 일반적 효력에 해당하는 동거, 부양, 협조, 정조의무 등은 생기지 않는다. 또한 생존 동거인에게는 법정상속권도 인정되지 않는다.

법정동거인 사이에서 자녀가 출생한 경우 친생추정에 관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으므로, 친자관계를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별도의 인지가 필요하다.

(2) 법정동거인은 공정증서의 방식으로 강행규정을 보충하거나 임의규정과 다른 내용의 계약을 체결할 수 있으나(벨기에민법 제1478조), 제1477조의 강행규정 및 공서양속에 위반하거나 친권, 후견, 법정상속에 관한 규정과 모순되는 조항을 두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법정동거는 당사자 사이에 부양의무를 발생시키지 않지만, 당사자는 계약으로 부양에 관한 사항을 정할 수 있다(법정동거 존속 중은 물론 동거 해소후의 부양에 관한 약정도 가능하다). 법정동거에 관한 계약은 주민등록부에 기입된다.

4. 해소

법정동거는 다음과 같은 경우에 해소된다(벨기에민법 제1476조 제2항). ⅰ) 일방의 사망, ⅱ) 법정동거인 일방이 혼인한 경우(법정동거의 상대방과 혼인한 경우이든 제3자와 혼인한 경우이든 관계없다), ⅲ) 법정동거인 쌍방이 공동으로 신분등록공무원에게 해소의 의사를 표시한 경우, ⅳ) 법정동거인 일방이 신분등록공무원에게 일방적으로 해소의 의사를 표시한 경우. 이 경우 신분등록공무원은 8일 내에 다른 일방에게 해소의 의사를 송달하여야 한다(벨기에민법 제1476조 제2항). 신분등록공무원은 법정동거의 해소를 주민등록부에 기록한다.

법정동거에 대해서 별산제가 적용되었던 경우에는 법정동거의 해소에 따른 재산분할의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법정동거 해소 후의 부양에 대해서 별도의 약정이 있었던 경우를 제외하면 부양청구권도 발생하지 않는다.

V. 네덜란드

도입과 현황

(1) 네덜란드에서는 1998년 1월 1일부터 2인의 동성 및 이성 사이에 동반자관계를 등록할 수 있게 되었다(등록동반자관계). 네덜란드에서도 등록동반자관계의 도입에 관한 논의는 ‘혼인을 원하지만 혼인을 할 수 없는 사람들’(동성 간에 혼인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으나, 법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동성뿐만 아니라 이성간의 결합까지도 포용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네덜란드의 입법자는 프랑스, 벨기에의 입법례와 달리 등록동반자관계에 대해서 혼인에 준하는 법적 지위를 인정하였다. 등록동반자관계가 성립하면 상대방의 혈족과 인척관계가 발생하고, 부부간의 권리, 의무도 똑같이 인정된다. 법정부부재산제와 배우자 상속에 관한 규정도 등록동반자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2) 2001년 네덜란드에서 성립한 혼인 중 이성 간의 혼인은 80,000건이었으며, 동성 간의 혼인은 2,400건으로 전체 혼인수의 약 3%를 차지하였다. 최근까지도 이러한 비율에는 큰 변화가 없다. 2019년에 성립한 이성 간의 혼인수는 62,146건이며, 동성 간의 혼인수는 1,419건이었다(남성 간의 혼인수 675건, 여성 간의 혼인수 744건).

한편 등록동반자관계에서는 이와 달리 이성간의 결합이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001년에 등록된 동반자관계는 1,700건인데, 이 중 동성 간의 결합은 25%를 차지하였으나, 2011년에 이 비율은 4.8%였으며, 2015년에는 3.45%에 머물렀다. 2018년에 등록된 19,830건의 동반자관계 중 19,181건은 이성간의 결합이었고, 동성간의 결합은 649건(남성간의 결합 311건, 여성간의 결합 338건)으로 전체의 3.27%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혼인·등록동반자관계: 2000-2020]

2. 성립

네덜란드민법은 등록동반자관계의 성립요건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ⅰ) 등록동반자관계는 이성간의 결합이든 동성간의 결합이든 관계없이 두 사람에 한하여 허용되지만(네덜란드민법 제1장 제80조a 제1항), 이미 타인과 혼인중이거나 등록동반자관계에 있어서는 안 된다(네덜란드민법 제1장 제80조a 제7항). ⅱ) 혼인이 금지되어 있는 근친간(직계혈족 및 형제자매)에는 등록동반자관계도 허용되지 않는다(네덜란드민법 제1장 제80조a 제7항). ⅲ) 원칙적으로 성년자만이 등록동반자관계를 맺을 수 있다(미성년자는 중요한 사유가 있는 경우 법무부장관의 허가를 받아 등록동반자관계를 맺을 수 있다. 네덜란드민법 제1장 제80조a 제6항).

당사자의 신청을 받은 신분등록공무원이 동반자관계등록에 관한 증서를 작성하여 교부한 후 14일이 경과하면, 지방행정관청에서 당사자 및 2인 내지 4인의 증인이 참여한 가운데 신분등록부에 동반자관계가 기재된다(네덜란드민법 제1장 제80조a 제3항, 제5항, 제6항).

3. 효력

(1) 혼인에 준하는 효력

네덜란드의 등록동반자관계는 이성간의 결합에 대해서도 허용된다는 점에서는 위에서 본 벨기에나 프랑스의 입법례와 같지만, 효력에 있어서는 위의 두 입법례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프랑스의 PACS나 벨기에의 법정동거가 혼인에 비하여 ‘가벼운 결합’이라면 네덜란드의 등록동반자관계는 혼인에 준하는 ‘무거운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즉 혼인의 효력이 등록동반자관계에서도 거의 대부분 인정된다. 따라서 등록동반자관계는 효력면에서 혼인과 별 차이가 없다).

(2) 등록동반자 사이의 관계

등록동반자와 상대방의 혈족 사이에는 인척관계가 발생한다(네덜란드민법 제1장 제3조 제2항). 또한 등록동반자는 혼인한 배우자와 마찬가지로 상대방의 성(姓)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자신의 성 앞이나 뒤에 배우자의 성을 붙이는 것도 가능하다. 네덜란드민법 제1장 제9조. 네덜란드에서는 혼인 후에도 부부는 각자 자신의 성을 유지하며, 다만 원하는 경우 상대방 배우자의 성을 사용할 수 있다).

부부간의 일반적인 권리의무에 관한 규정도 등록동반자관계에 적용된다. 이에 따라 등록동반자는 서로에 대하여 신의를 지키고 협조하여야 하며, 필요한 것을 제공하여야 한다(네덜란드민법 제1장 제81조). 등록동반자는 자녀의 양육비를 포함하는 일상가사에 관한 채무에 대하여 각자의 수입과 재산에 따라 책임을 진다(네덜란드민법 제1장 제84조).

등록동반자관계의 재산관계에 대해서도 부부간의 재산관계에 관한 규정이 적용된다(네덜란드민법 제1장 제80조b, 제93조). 동반자관계의 등록 전에 당사자들이 법정재산제를 배제하고 다른 유형의 재산제를 선택하는 계약을 하지 않으면, 법정부부재산제인 공유제가 등록동반자관계에도 당연히 적용된다. 이로써 네덜란드의 입법자는 부부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등록동반자관계에 대해서도 강한 경제적 유대관계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등록동반자는 부부와 마찬가지로 서로 부양의무를 부담하며(네덜란드민법 제1장 제80조b, 제81조), 상속법에 있어서도 배우자와 동일한 법적 지위를 갖는다(네덜란드민법 제4장 제8조).

(3) 등록동반자와 자녀의 관계

등록동반자의 일방과 상대방의 자녀 사이에는 인척관계가 발생한다(네덜란드민법 제1장 제3조 제2항). 등록동반자 쌍방은 그들의 가족에 속한 미성년자녀(공동의 자녀, 상대방 동반자의 자녀)를 보호, 양육하고 그 비용을 부담하여야 한다(네덜란드민법 제1장 제80조b, 제82조).

등록동반자관계에 있는 여성이 자녀를 출산한 경우 그의 남성 동반자가 자녀의 아버지가 된다(혼인 중에 아내가 자녀를 출산한 경우 친생추정규정에 의하여 모의 남편이 자녀의 아버지가 되는 것과 같다). 2인의 여성으로 이루어진 등록동반자관계에서 동반자의 일방이 자녀를 출산한 때에는, 그 자녀가 익명의 정자제공에 의하여 포태된 경우에 한하여, 상대방 동반자가 자녀의 모가 된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자녀에게 2명의 모가 생기는 결과가 된다(네덜란드민법 제1장 제198조 제1항 b). 어느 경우이든(모의 동반자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모와 모의 등록동반자는 자녀의 부모로서 공동친권자가 된다.

등록동반자관계에 있는 쌍방은 자녀를 공동으로 입양할 수 있으나, 두 사람이 입양 전 3년간 동거해야만 하고 그 자녀를 1년간 부양하였을 것이 요구된다. 등록동반자 일방이 상대방의 자녀를 입양하는 경우에도 동일한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네덜란드민법 제1장 제227조 제2항, 제228조 제1항 f호).

4. 해소

(1) 등록동반자관계의 해소에 관한 규정 역시 대체로 혼인의 해소에 관한 규정과 유사하지만, 양 당사자가 합의한 경우 법원의 재판을 거치지 않아도 해소가 가능하다는 점(이혼의 경우에는 반드시 법원의 재판을 거쳐야만 한다)에서 이혼과 차이가 있다. 등록동반자관계는 일방 당사자의 사망 이외에 다음과 같은 사유로 해소된다(네덜란드민법 제1장 제80조c). ⅰ) 일방 당사자가 실종선고를 받은 후 다른 일방이 새로 혼인하거나 등록동반자관계를 맺은 때. ⅱ) 등록 동반자관계의 쌍방이 해소에 합의한 경우. 이 경우 당사자는 변호사 또는 공증인으로부터 서명을 받은 합의서를 신분등록공무원에게 제출하여야 하며, 당사자가 제출한 합의가 신분등록부에 기록되면 등록동반자관계는 해소된다(합의가 이루어진 때로부터 3개월 내에 신분등록공무원에게 제출되어야만 신분등록부에 기록된다. 네덜란드민법 제80조d 제3항). ⅲ) 등록동반자 일방의 청구에 의하여 법원이 등록동반자관계의 해소 판결을 한 경우. 사전 별거와 같은 요건은 규정되어 있지 않으며, 당사자의 관계가 파탄되었다는 사실만 증명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청구인이 재판절차에서 진지하고 일관되게 해소의 의사를 표시하는 것만으로도 파탄 사실이 충분히 증명되었다고 보는 것이 판례의 태도이므로, 파탄 사실의 증명은 어렵지 않다. 등록동반자관계는 당사자의 신청에 의하여 신분등록부에 판결이 기록되면 해소된다(네덜란드민법 제80조e 제2항). ⅳ) 등록동반자관계를 혼인으로 전환시킨 경우.

(2) 등록동반자관계 해소 후 부양이 필요한 일방은 상대방에 대해서 부양을 청구할 수 있으며(네덜란드민법 제80조e, 제157조), 상대방이 등록동반자관계의 존속 기간 동안 취득한 연금에 대한 권리에 대해서도 절반의 분할을 청구할 수 있다(네덜란드 연금청산법 제2조). 등록동반자관계가 해소되면 일방 당사자는 상대방에 대하여 재산관계의 청산으로서 재산분할을 청구할 수 있으며, 법정재산제인 공유제가 적용되었던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공동재산의 절반에 대해서 분할을 청구할 수 있다(네덜란드민법 제1장 제80조b, 제100조 제1항).

VI. 정리와 분석 – 시사점의 모색

넓은 의미에서의 등록동반자제도는 크게 동성간의 결합만을 허용하는 입법례(편의상 제1유형의 등록동반자관계라고 한다)와 동성 및 이성간의 결합을 아우르는 입법례(제2유형의 등록동반자관계라고 한다)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제1유형의 등록동반자관계는 처음부터 동성혼에 대한 대안으로 마련된 것이었으므로, 동성혼이 도입되면서 더 이상 존속해야 할 이유를 상실하게 되었다. 따라서 제1유형의 등록동반자관계를 도입했던 나라들이 동성혼의 입법과 동시에 더 이상 등록동반자관계의 성립을 허용하지 않게 된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예외적으로 오스트리아는 동성혼을 도입하면서 등록동반자관계를 폐지하지 않고 오히려 이성간에 대해서까지 개방하는 개정을 단행하였다).

이와 달리 제2유형의 등록동반자관계는 처음부터 단순히 동성혼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성격을 넘어서 전통적인 혼인제도에 대한 대안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따라서 제2유형의 등록동반자관계를 채택한 나라에서는 동성혼이 도입된 후에도 등록동반자관계가 독자성을 지니고 존속할 뿐 아니라 그 성립률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한편 효력 면에서 보면 제1유형의 등록동반자관계는 동성혼에 대한 대안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각국의 입법자는 가능한 범위에서 동성의 등록동반자관계에 혼인과 유사한 지위를 인정하려고 시도하였다(예를 들어 독일에서는 등록동반자가 공동으로 자녀를 입양할 수 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부부와 같은 법적 지위를 갖는다). 반면에 제2유형의 등록동반자관계를 도입한 나라들에서는 입법정책에 따라 등록동반자관계의 효력에 상당한 차이가 나타났다. 네덜란드와 같이 등록동반자관계에 혼인과 유사한 효력을 인정한 입법례가 있는가 하면, 벨기의 법정동거와 같이 혼인과 비교하여 현저히 약한 효력을 인정한 입법례도 있다(프랑스의 PACS는 두 입법례 사이에 위치하는데, 벨기에의 입법례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에서는 등록동반자관계에도 법정부부재산제인 공유제가 적용되고, 관계의 해소 시에는 재산관계의 청산으로서 재산분할(연금분할 포함)이 이루어지는 반면, 벨기에의 법정동거과 프랑스의 PACS는 원칙적으로 별산제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해소 시에도 (귀속이 불명한 재산을 제외하면) 재산관계의 청산이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네덜란드는 등록동반자 사이에 부부와 동일한 부양의무를 인정하지만(해소 후의 부양의무도 인정된다), 벨기에의 법정동거에서는 아예 부양의무가 인정되지 않는다. 프랑스의 PACS에서는 당사자 사이에 부양의무가 인정되지만, PACS는 당사자 일방의 의사에 의해서 언제든지 해소할 수 있으므로, 상대방에 대한 부양의무에서 벗어나고 싶으면 언제든지 가능하다는 점에서 부부관계와 본질적으로 다르다(PACS 해소 후에는 부양의무가 인정되지 않는다). 이러한 차이는 관계의 해소에서도 나타난다. 네덜란드에서는 등록동반자관계의 해소에 관한 규정도 이혼에 관한 규정과 대체로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나(물론 당사자가 해소에 합의한 경우 법원의 재판을 거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는 이혼과 차이가 있다), 벨기에의 법정동거와 프랑스의 PACS는 법원의 재판을 거치지 않고도 관계를 해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일방적인 의사로도 해소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혼과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의 입법례에서 볼 수 있는 위와 같은 차이점은 해당 국가에서 등록동반자관계의 성립률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앞의 통계에서 본 바와 같이 프랑스의 PACS와 벨기에의 법정동거는 최근 혼인율을 추월할 정도로 증가한 반면, 네덜란드의 등록동반자관계는 혼인수와 비교해 볼 때 여전히 낮은 비율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사실은 해당국 시민들의 상당수가 혼인보다 ‘가벼운 제도’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한때 우리사회에서는 프랑스의 PACS와 같은 제도를 도입하면 출산율이 증가할 것이라는 의견이 제시된 적이 있었다. 혼인제도의 대안으로서 프랑스의 PACS와 같은 ‘가벼운 제도’를 도입하면 혼인을 부담스러워하는 젊은 세대가 비교적 쉽게 법적인 동거관계를 형성할 수 있으며, 그 관계에서 자녀가 태어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출산율의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그 논거였다. 실제로 프랑스에서 PACS가 도입된 후 출산율이 증가하였는가를 살펴보면 PACS의 도입과 출산율 사이에 의미있는 인과관계를 찾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프랑스에서 PACS가 시행된 것은 1999년 11월 16일이었으므로, 2000년부터 PACS가 본격적으로 성립하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1999년 이성간 PACS 성립수 3,551건, 2000년 이성간 PACS 성립수 16,859건). 이 시기의 출산율의 변화추이를 보면 1999년 출생아수 744,800명, 2000년 774,800명, 2001년 770,900명, 2002년 761,600명으로 나타난다. 한편 최근의 이성간 PACS 성립수는 1999년 도입 당시와 비교하여 약 10배 가량 증가하였는데(2017년 188,233건, 2018년 200,282건, 2019년 188,014건), 프랑스의 출산율은 그에 비례하여 높아지지 않았다(2017년 출산아수 730,200명, 2018년 719,700명, 2019년 714,000명). 이러한 통계에 비추어 볼 때 전통적인 혼인제도에 대한 대안으로 PACS와 같이 보다 ‘가벼운 관계’를 도입하는 것이 출산율을 제고시킬 것이라는 기대는 별 근거가 없음을 알 수 있다(프랑스에서도 PACS의 도입이 출산율을 높인 원인 중 하나라는 주장은 찾아볼 수 없다). 나아가 프랑스의 PACS나 벨기에의 법정동거와 같은 제도는 그 관계의 해소에 관하여도 이혼보다 훨씬 간단한 절차를 두고 있는데, 이점도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사회에 프랑스의 PACS와 유사한 제도가 도입된다고 가정할 경우, 해소에 대해서도 현행 이혼법보다 간단한 절차가 규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데, 이는 미성년자녀의 보호와 관련하여 또 다른 문제점을 드러낼 수도 있다. 혼인보다 가벼운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젊은 남녀의 결합을 촉진하고 이를 통하여 출산율을 제고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 것은 각자의 자유이겠지만, 그 관계에서 태어난 자녀의 보호 문제가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혼인보다 가벼운 제도를 도입한다면 그 해소율도 이혼보다 높게 형성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데, 그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고 있을 자녀들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할 것이다(자녀의 출생에만 집착하지 말고 태어난 자녀의 복리에 대해서도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