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

박물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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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이다

박현택 지음

통나무, 2023(1판1쇄)

이 책을 읽을 때 쓴 책갈피는 국립고궁박물관에 갔을 때 집어온 것이다.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유물을 주제로 설명을 담은 카드를 만들고 스탬프를 찍어갈 수 있도록 해 놓았길래, 기념장메달이며 어가 등 종류별로 스탬프를 찍어서 흐뭇하게 가져온 기억이 있다. 책상 위에 두고 요긴하게 쓰고 있다. 그리고 ‘백제금동대향로’, 지난 겨울 가끔 들르던 펀딩 사이트에서 백제금동대향로 미니어처 제작을 위한 펀딩을 하고 있어서 예약을 하고 두 달 정도 기다렸다가 받은 것이다. 좋은 향을 구해서 피워보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요즘 디지털 프린팅 기술이 정말 좋아서 섬세하고 아름다운 대향로를 수시로 영접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자주는 아니지만 박물관 나들이는 흐뭇하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고, 고궁박물관도 좋다.

이 책 『박물관에서ㆍ서성이다』는 이러한 박물관의 경험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었다. 책의 지은이 박현택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디자이너로 30여 년간 일하고 정년퇴직했고 현재, 연필뮤지엄 관장으로 있으면서 디자인, 문화재, 박물관 등을 주제로 글을 쓴다. 지은이의 이력을 보면서 요즘 박물관 디자인 숍에 있는 다양하고 멋진 기념품들이 이러한 이들의 안목인가 궁금하기도 했다.

『박물관에서ㆍ서성이다』는 크게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박물관의 전통 문화유산을 박물관 디자이너의 관점으로 본 “옛것은 살아있다” 그리고 디자인의 이념과 표현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시대정신을 반영해 왔는지 소개하는 “예술과 디자인 사이에서 진화하다”로 구성되었다. 모든 글이 문장은 아름답고 애정을 담은 전문가의 깊은 내공이 느껴져서 아주 좋았다.

지은이는 “박물관의 안과 밖에서 서성서성 배회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주역이 아닌 경계인으로 박물관 안팎을 넘나들며, ‘박물관’과 ‘디자인’을 넘어 객관적 관점을 유지하면서 다듬어진 내용과 문장은 그 감성과 지식이 느낌으로 전달되는 듯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인왕제색도를 설명한 ‘인왕산에 비 그치고’는 매일 인왕산을 보며 하는 퇴근길을 더욱 인상 깊게 해주었다. ‘방물장수, 박물장수’는 어원에 대한 탐구가 흥미로웠고 마지막 ‘빛바라기’는 책의 마무리로 더 없이 근사하게 느껴졌다.

지은이는 말한다.

“즉물적인 명랑함을 드러내기엔 직사광선만 한 것이 없다. 그러나 물체 자체가 아니라 물체와 물체 사이의 틈, 물체의 얼룩이나 영혼은 희미한 반사광 속에서 비로소 신비로워진다. 동물은 몸이 다치거나 허약해지면 동굴이나 둥지로 들어간다. 어둡고 고요하다. 밝고 소란하고 분주한 곳에서는 안식이 불가능하다.”

“생명체의 모든 감각은 생존 반응에서 발달한다. ‘감각’하여 ‘지각’하고, 표상할 수 있는 능력이 감성이다. 창조적 행위는 사물과 사건의 본성에 대한 관찰에서부터 시작하여, 마침내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낸다. 디자인의 목적은 세계를 아름답게 하는 것이다.”

이숙현 편집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