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달의 메시지

상담소의 역사가 곧 가족법 개정운동의 역사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를 위해 한 발 더 나갈 수 있기를

상담소의 구성원으로 평생을 보내며 상담자로서 잊을 수 없는 내담자의 사연도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 있지만 이와 더불어 역사적인 가족법 개정의 현장에 서 있을 수 있던 것을 무엇보다 자랑스럽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동성동본 금혼규정의 헌법불합치 결정이나 호주제 폐지 운동에 앞장서서 원하던 결론에 이르렀던 순간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가정 문제 전문 상담기관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법률구조 기관인 상담소는 올해 창립 68주년의 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담소의 발자취는 상담소에서 발간한 『한국가정법률상담소 30년사』 (1988년), 『가족법개정운동 37년사』(1992년), 『한국가정법률상담소 50년사』 (2009년), 『가족법개정운동 60년사』(2009년)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상담소의 역사와 가족법 개정운동의 흐름은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상담소 창설자인 이태영 선생님은 1948년 마련된 ‘민법 중 친족상속편’이 헌법에 규정된 남녀평등에 바탕을 둔 민주주의의 이념에 반하여 남녀차별적인 성향을 드러내고 있음을 인식하고 그 문제들을 누구보다 앞서 지적했으며, 창설자의 이와 같은 문제의식은 1956년 상담소 창설 당시부터 가족법 개정운동을 상담소의 가장 중요한 과업 중 하나로 정하고 구체적인 실천에 옮기는 것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그 결과가 호주제 폐지였고 17차에 이르는 가족법 개정입니다. 가족법의 문제는 상담 현장에서 실감하는 것이었습니다. 내담자들과 그들이 겪고 있는 부조리한 가정문제를 상담하다 보면 현행법으로 해결이 가능한 것도 있지만 부조리한 관습이 그대로 투영된 시대착오적인 법으로 인한 구조적인 문제들도 많았기에 가족법 개정운동은 법률구조 사업을 원활히 하기 위한 선결과제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가정문제의 근본적 요인들을 해결하려면 가족법 개정과 함께 가족 구성원들의 의식 개혁도 필요했습니다.

상담소의 자료집에는 동성동본 금혼규정의 철폐나 호주제 폐지를 위한 과정에서 상담소에 전해진 저주에 가까운 내용을 담은 항의 편지들이 사진으로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 당시 가족법 개정운동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상담소 구성원이나 가족법 개정운동에 나선 이들을 이혼을 조장하고 인륜을 무너트리는 가정 파괴범이나 패륜 집단으로 규정하고 동성동본 금혼규정이나 호주제가 없어지면 곧 우리 가정은 산산조각이 날 것이며 사회는 혼란에 휩쓸리게 될 것이라 목청을 높였습니다. 하지만 호주제가 없어지고 호적이 가족관계등록부로 대체된 지 20년이 되었지만 그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듣지 못했습니다. 실체가 없는 관념적 이념으로 현실의 삶을 왜곡시키는 법, 특히 가족관계를 규율하는 가족법을 개정하는데 불필요한 논쟁을 계속하거나 지나치게 목소리만 큰 방향의 여론을 의식하여 실질적인 의미를 갖게 될 법의 개정을 미루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무가치하며 이런 행태야말로 우리 국민의 삶의 질을 얼마나 후퇴시키는 일인지를 저는 오랜 기간 가족법 개정운동을 하면서 절실히 느껴왔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지난 2022년 10월 헌법재판소가 내린 결정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민법 제809조 제1항 등 위헌소원 - 8촌 이내 혈족 사이의 혼인 금지 및 무효 사건’에서 8촌 이내 혈족 간 혼인을 금지하는 금혼조항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지만, 8촌 이내 혈족 간 혼인을 일률적으로 무효로 보는 무효조항은 혼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헌법 위반이라는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이러한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8촌 이내 혈족 간 혼인을 일률적으로 무효로 규정한 민법 제815조 제2호에 대한 개정이 필요해졌고, 얼마 전 법무부 가족법특별위원회에서는 차제에 친족 간 혼인 금지 범위에 대해 실질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회의가 있었다고 합니다. 상담소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대의 변화 그리고 국민의 의식 변화에 따라 이 법의 개정을 주장한 바 있습니다. 상담소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 국민의 정서와 문화를 감안하여 신중하게 접근하되 한편으로는 세계적인 입법례와 시대의 변화, 정서 등을 고려하여 현행법상 근친혼에 대한 금혼 조항 검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친족 범위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모색이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특히 가족 관계를 규율하는 가족법에서는 지구촌, 세계화라는 언어가 보편화되고 있는 시대에 살면서 세계적인 흐름과 배경, 사회 전반 인식의 변화 등을 폭 넓게 보고 그 범위를 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법에 엄격하게 테두리를 만들고 정해 놓지 않으면 국민의 행위가 도덕적 한계를 벗어날 것이라 예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특히 신분행위에 있어서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무엇보다 지금은 농경사회 대가족 체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4촌도 존재하기 어려운 가족구조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가족 현실은 급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바르게 반영하는 가족법이 될 수 있도록 개정의 방향에 속도를 내야 할 것입니다.

곽 배 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