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달의 메시지

이 땅의 모든 번민하는 이웃들과 함께

상담소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생각하며

올해는 상담소 창립 68주년의 해입니다. 상담소의 역사와 과업을 생각하며 67차 년도 즉 2023년도 상담통계집을 다시 펼쳐 보았습니다. 상담소는 창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상담소와 관련한 모든 자료를 꼼꼼하게 기록하고 모으고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의 일환인 상담통계집에 의하면 1956년부터 2023년까지 상담소에서 진행한 총상담은 면접 상담 70만여 건을 포함해 2백만 건이 넘고 지금은 업무협력기관으로 전환되어 통계를 집계하지 않게 된 전국 지부의 경우 1983년부터 2019년까지 기록된 상담 기록이 2백 40만여 건에 이르고 있습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이름으로 지금까지 다루어진 상담이 4백만 건이 훌쩍 넘는 것입니다. 이 숫자는 그냥 숫자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 삶의 절실한 시간입니다. 그리고 그 한 사람과 관련한 가족과 가정을 생각하면 상담소를 거쳐 간 사람과 그들이 속한 가정이 얼마나 많은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정 문제라는 특성상 면접상담을 권하고 있지만 사회상의 변화에 따라 전화나 인터넷 상담 나아가 인터넷을 통한 화상상담 그리고 각종 출장상담까지 다채로운 상담방법의 진화를 살펴보면 우리 사회의 변화 그리고 그 변화와 상담소의 유기적인 관계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상담소는 우리나라 최초의 법률구조 기관으로 1956년 창설 이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번민하는 이웃과 함께 그리고 가정의 평화가 사회의 평화 나아가 인류의 평화를 이루는 근간이 된다는 변치 않는 믿음으로 묵묵히 걸어왔고 또 걸어가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상담소의 변치 않는 정체성이란 우리나라 최초의 법률구조 기관이라는 점이며 특히 가정문제에 관해 역사적으로 검증된 최고의 전문성을 축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전적인 정의로 법률구조란 “도움이 필요한 극빈자들에게 무료로 또는 명목상의 액수 정도의 비용만 받고 행하는 전문적인 법률적 조력”을 의미합니다. 1958년 국제변호사협회는 법률구조기관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국가별 법률구조를 규정한 법률 및 기타 조항들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자 하는 명목 등으로 국제법률구조협회의 설립을 후원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보면 수 세기에 걸친 가부장제적 전통에서 여성의 권익신장 그리고 가족법상 남녀평등을 목표로 1956년부터 법률구조 사업을 시작한 우리 상담소가 얼마나 선진적인 걸음을 해왔는지 자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뿐 아니라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자료에 의하면 “과거 우리나라의 법률구조사업은 사설단체인 한국가정법률상담소나 변호사단체에 의하여 행해졌다. 그러나 제도의 중요성에 대한 정부와 국민의 인식이 부족하고, 사설단체의 인력이나 예산의 부족으로 인하여 활성화되지 못하였다”라고 법률구조에 관한 설명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은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지는데 첫 단락의 경우 어느 정도는 사실이고 어느 정도는 부정확합니다. 민간단체로써 법률구조 사업을 처음 시작한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명확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인력과 예산의 부족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상담소는 68년 동안 역사를 이어오며 가정문제 전문 상담 기관이자 법률구조 기관으로 역할을 다해 왔으며 가정의 민주화를 통한 가족구성원 각자의 복리를 위해 가족법개정운동은 물론 다양하고 폭넓은 사회교육 사업을 가장 먼저 시작했고 가정문제와 관련한 조사 연구 및 출판 홍보에 이르기까지 열악한 상황에서도 놀라운 성과를 거두어 왔기 때문입니다.

상담소가 최초로 법률구조 사업을 시작하고도 30여 년이 지난 후에야 상담소가 주축이 되어 법률구조법이 만들어진 이후 비로소 드디어 상담소도 법률구조법에 의거 약간의 예산을 국가로부터 받게 되면서 조금은 안정적으로 법률구조 사업을 진행하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상담소의 선구적 면모 그리고 민간단체이기 때문에 더욱 두드러지는 자발성과 창의성에 기반한 가정문제 및 법률구조를 포괄한 다양한 사업을 펼치면서 사회 발전에 기여해 왔다는 자부심과 보람이 무색하게도 국가 기관이 있는데 민간단체까지 있어야 하나라는 일부 정책 당국의 잘못된 시선이나 예산책정에 있어 일괄적으로 몇 % 삭감한다는 예산 당국의 방침 앞에서는 할 말을 잊게 됩니다. 백억, 천억 단위에서 5% 삭감한다는 것과 몇억 원 에서 같은 %로 삭감한다는 것은 가정 문제와 관련한 주요한 사업을 하지 말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해마다 예산 신청 앞에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법률구조 사업을 두고 이러한 고뇌를 거듭하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인가 묻고 싶습니다.

변화하는 사회, 변화하는 가정이 있고 필연적으로 번민하고 고통당하는 가정과 사람이 있습니다.

“1952년 1월 제2회 사법고시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으로서 합격의 영광을 안게 되었지만, 야당집 마누라라는 이유로 판사 임명을 거부당했고 할 수 없이 변호사 개업을 했더니 마치 이 나라의 여성들은 5천 년 동안이나 여성 변호사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찾아와 끝없는 탄식과 하소연을 쏟아 놓기 시작했다.”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이며 상담소 창설자인 이태영 선생님이 상담소의 시작에 관해 남기신 말씀입니다.

번민하는 이웃들의 탄식과 하소연이 21세기가 되었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 가정과 가족 구성원들은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무엇보다 나날이 심화되는 경제적 불평등 속에서 더 다양하고 더 민감하고 복잡한 고뇌와 번민을 겪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상담소는 든든한 울타리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바로 이러한 이웃들의 곁을 언제나 지켜갈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상담소는 국가의 경제적 정책적 지원이 절실히 요구됨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곽 배 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