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달의 메시지

법과 현실, 때로 너무 먼 그 사이에서

양육비 이행확보를 위한 관건

예전에 『삼십 년에 삼백 년을 산 사람은 어떻게 자기 자신일 수 있을까』라는 산문집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얼룩진 우리 현대사는 더할 수 없이 비극적이지만 이 비슷한 역사적 배경을 가진 나라들 가운데 우리처럼 경제적, 사회적 도약을 이룩한 나라도 없기에 우리는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 합니다. 하지만 이 같은 압축성장이 반드시 사회 전반의 성숙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는 좀 더 자신을 돌아보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관습 등 정신적 측면에서의 깊이 있고 성숙된 자세와 민주시민으로서의 태도 전반에 대해서도 보다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의 급변하는 역사 속에서 상담소 또한 함께 발맞추어 왔습니다. 한국전쟁 후 폐허 위에서 나라를 다시 세워갈 때, 상담소는 문을 열었고 사회의 변화와 더불어 변화하는 가정 그 안에서 가부장적 사고로 인한 성차별로 고통당하는 가족구성원들의 삶을 대변해 왔던 것입니다. 법률구조 사업과 가족 갈등을 예방하기 위한 교육 그리고 가족법의 제정과 개정운동이 그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상담소의 사업은 그것이 우리 사회 가정의 현실 그 자체에 기반을 둔 것이었기에 무엇보다 절실했고 설득력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급속한 사회 변화와 발전, 현실적인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제와 여성 차별에 근거한 동성동본 금혼이나 호주제를 폐지하는 데에는 반세기 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생각해보면 ‘호주제를 폐지한다고 해서 지금 우리 가족이 깨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당연한 말을 입이 아프도록 반복해야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한부모 가정의 양육비 문제 또한 이러한 현실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안의 대전제에는 관련 부처와 법원 등이 모두 동의하지만 실질적인 해결을 위한 세부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각자의 입장에 따라 현실의 문제에 대한 인식차이가 있어 답답하고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지난 4월에 이어 다시 양육비 문제를 언급하게 됩니다. 상담소가 본격적으로 양육비 문제를 제기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지난 2001년의 일입니다. 상담 과정에서 이혼 가정의 자녀 양육과 양육비 문제가 시급한 현안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5년 정도가 지난 2015년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제정이 이루어졌고 여성가족부 산하에 양육비이행관리원이 출범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4월에 지적한 바 있듯이 상담소의 양육비 소송구조는 여전히 증가추세에 있고 이혼 후 자녀양육과 양육비 문제 해결을 위한 법적인 과제 또한 적지 않습니다. 상담소는 양육비 이행확보를 위한 실효성 있는 대안 마련을 위해 다각도로 의견을 개진해 왔고 마침내 양육비 채무자를 대상으로 실질적인 제재가 가능해졌습니다. 6월 10일부터 시행되는 운전면허 정지를 비롯해 7월부터 시행될 출국금지, 명단공개, 형사처벌 등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제목을 보면 상당한 진전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 내용들로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갈 길이 너무 멀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먼저 시행되는 운전면허 정지 처분의 경우, 여성가족부 장관이 양육비 이행 심의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직권으로 지방경찰청장에게 운전면허 정지 처분을 요청하게 됩니다만 양육비 채무자가 직접적인 생계유지를 목적으로 운전면허를 사용하는 경우 정지 처분이 불가하다니, 생계유지가 곤란한 정도를 어디까지 인정하여 이를 제한할 것인지 의문이고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녀 양육과 양육비 문제가 양육비 채무자의 생계문제와 순위가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출국금지의 경우도 미지급 양육비가 5,000만 원 이상인 경우로 시행령이 논의되고 있다는데, 이 또한 양육비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처분이라고 봅니다. 대체로 양육비 5,000만 원 정도라면 거의 9. 10년 동안 지급할 양육비이며 이 정도면 미성년 자녀가 대부분 성년이 될 기간입니다.

또한 명단 공개는 이른바 ‘배드 파더스’의 공적인 등장입니다. ​양육비 채권자가 신청하면 채무자에게 3개월 이상 소명의 기회를 부여한 후, 양육비 이행 심의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 공개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한시가 급한 자녀 양육비 문제에 있어 지금까지 비공식적인 명단 공개에 대해 명예훼손을 주장해 왔던 양육비 채무자들의 인권만 중요한 것인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형사처벌이 있습니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것은 채무와 같기 때문에 감치 명령에도 불구하고 1년 이내에 양육비 채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내릴 수 있다고 규정 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위의 개정 내용은 모두 감치명령 결정을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감치는 이행명령 결정 후 정기적 지급의무를 3기 이상 이행하지 않았을 때 비로소 신청이 가능하기 때문에 감치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이행명령부터 진행해야 하고 또 이행명령 결정 후 감치 신청을 하여 감치 결정까지 받은 사건에 대해서는 정기적 지급 의무를 다시 3기 이상 이행하지 않더라도 감치 신청을 다시 할 수 없고, 이행명령을 다시 신청해야 합니다. 이행 명령이 공시송달로 종결된 경우 감치 신청은 불가능 합니다. 따라서 감치 명령 결정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감치 신청을 아예 못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위와 같은 내용을 설명하면 내담자들의 얼굴에는 짙은 피로감과 실망감이 떠오르고 상담자는 본의 아니게 미안함과 깊은 위로를 건넬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상담소 가족법 개정의 역사는 위와 같은 순간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이루어 온 것입니다. 하지만 양육비를 받아야 하는 것은 자녀를 키우는 한부모이고, 우리의 미래인 그들의 미성년 자녀입니다. 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이러한 법이 있은들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이러한 법은 법 모르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입니다. 이들이 법적으로 보장된 자신의 권리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으며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담당부처인 여성가족부와 법무부와 법원이 그들의 입장에서 보다 깊이 심사숙고 해 주기를 바랍니다. 바로 이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곽 배 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